1학년 때의 일이었다.
"경수야 너 수학 좀 알아?"
같은 방을 쓰던 컴공 룸메이트의 질문이었다. 전공 교재를 보여주며 묻는 친구의 표정에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전공인데 교수님이 다들 고등학교 때 행렬 배웠을테니 자세히 설명 안하고 그냥 넘어간다고 해가지고...... 그런데 우리 학교가 특성화고라 수학, 영어 이런 거 잘 안 했거든." 행렬이라는 말에 잠시 주춤했지만 평소 수학을 좋아했던 터라 혹시 아는 게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 교재를 보았다. 문제 자체는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지만 관련 공식조차 배우지 않은 행렬을 풀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일 년 뒤, 나 역시 같은 상황을 맞게 되었다.
"행렬은 고등학교 때 다들 하고 왔을테니 자세하게 설명을 하진 않겠습니다."
수학 관련 전공 강의에서(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수업 당시) 첫 영상 때 하신 말씀이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당황함과 함께 앞으로의 수업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다행히 크게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 과제와 시험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심화적인 내용이 나왔다면 학점에 직결되는 큰 문제였을 것이다. 물론 교수님이 그런 말을 하실 때 이의제기를 할 수도 있지만 막 수업을 시작하는 수십 명이 있는 강의실에서 그런 말을 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그 학생이 내 친구처럼 신입생이면서 독자적인 교육과정을 갖는 학교를 다녔다면 자신의 문제라 치부하고 속으로 삭힐 수도 있는 노릇이다.
"고등학교에서 다 배우고 왔을테니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전공, 교양을 막론하고 수학 관련 수업을 들을 때마다 교수님들이 하시는 말씀이었다. 확신에 찬 교수님의 어조에 몇몇 용기있는 친구를 제외하곤 학생들은 선뜻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게 된 원인은 2009년 개정된 교육과정에 있다. 매우 중요한 단원인 행렬을 제외시켰으며 수학에서 가장 기본인 집합과 명제를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로 이동시켰다. 심지어 최근 있었던 문이과 통합의 영향으로 고등교육과정 유일 선형대수 과목인 기하(기하와 벡터)는 진로선택으로 사실상 제외되었다. 교수님들은 이런 교육과정의 변동을 모른 채 수업을 진행하니 관련 과목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은 혼란에 빠지기 십상이다.
AI, 빅데이터, 양자 컴퓨팅 이론이 나오는 미래지향 인공지능 세대에서 교육과정이 개편 될수록 수학의 스펙트럼이 좁아지는 것은 국가 경쟁력에 큰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 더군다나 아이들의 학습 부담을 덜고 융햡형 인재를 만든다는 문이과 통합은 되려 수/과학을 죽이고 있다.
행렬을 비롯한 선형대수학은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AI 기계학의 기초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아가 핀테크에도 접목할 수 있다는 것을 IBM 퀀텀 총괄부사장인 로버트 슈터가 언급한 바 있다. 세계 각국의 상위권 대학들과 연구소에서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선형대수학을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의 대학생들이 처음 접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 생각에 수학을 바깥 세계(산업, 학문 등)에 적용하는 데 한계는 없다." 아야스디 창업자 군나 칼슨(스탠퍼드대 수학 박사 / 스탠퍼드대 수학과 학과장 / 프린스턴대, 시카고대 수학과 교수)이 한 말이다. 군나 칼슨은 가능한 한 수학교육을 최대로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한국 정부나 시민단체가 수학 학습 과정에 간섭하는 것은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양자컴퓨터가 나오는 시대이다. 고성능 컴퓨터의 대명사였던 수퍼컴퓨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도 머지 않았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고등학교 시기에 수학을 더 가르치지는 못할 망정 교육과정을 축소시키는 것은 시대에 뒤쳐지는 것을 자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