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히만과 악의 평범성

2020.06.01 19:45:14

21세기 현재, 악의 평범성을 고민해보다

 

2020년 지금, 누군가에게 ‘홀로코스트’를 아느냐라고 물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각색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들어서 시대가 변하면 변할수록, 과거에 대한 뚜렷한 흔적들은 먼지가 사라지듯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우리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와 비슷한 ‘유대인’들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나치의 악행이라고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필자는 한나 아렌트의 책을 접하게 되어 '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는데 평범함 속에서 녹아있는 일반인이 무사고(無 思考)를 통해 얼마나 악한 짓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다.

 

소위 독일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을 ‘홀로코스트’라고 부르는데, 이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은 독일의 나치당과 그 주변국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조금만 더 언급하자면, 히틀러를 중심으로 이들이 최종 해결 즉 유대인 전멸을 목적으로 이들을 가스실로 보내게 된 과정은 순수 아리아인들로 조직된 인종 우월주의적 사상과, 그릇된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가담한 사람들 중에서, 정말 열정적으로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도 많았기에 그 정도로 그 당시에는 히틀러의 말이 법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던 것처럼 히틀러는 나치 부원 한 명 한 명 완벽하게 정신개조를 했다.

 

그렇기에, 나치 부원들은 자신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일에 매우 자부심을 가졌고, 유대인을 독일에서 추방하는 것이 유대인에게도 매우 효율적이며, 독일에서 쫓아 보내는 것이 전 세계에서 좋은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 대부분의 나치 부원들이 히틀러의 소속 아래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홀로코스트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지만 내가 주목했던 한 사람, 아이히만은 달랐다. 아이히만은 위에 언급했다 싶은 평범한 나치 부원들과는 다른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자 이웃, 그리고 아버지였다.

 

그는 나치당에 대한 애착으로 가입을 한 것도 아니며, 단순한 경제적인 이유로 나치당을 가입하게 되었다. 그는 다른 나치당 부원들과는 다르게, 자기가 실질적으로 수용소에 수감된 많은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행하였던 유대인 수용과 관련된 사무적인 일들에 대한 큰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자책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고 난 후, 솔직히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그래도 일말의 인간적인 정은 남아있었구나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반제 회의를 통해서 이런 생각들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반제 회의에 참가한 나치당의 고위급 간부들을 만나며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것 들을 합리화하게 된다. 나치당의 간부들은 자신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유대인 ‘학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뿐더러, ‘최종 해결’이라는 단어로 순화시키며, 직접적인 유대인 학살 수에 대해서도

단순한 ‘데이터’식으로만 나열하여 회의를 이어나갔다.

 

이를 통해서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다루지 않는 고위층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가지고 있었던 죄책감과 미안함을 단순한 ‘수치’로 변환시켜 버렸다. 이 회의를 통해서 그는 더욱더 열혈 하게 최종 해결에 박차를 가했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그는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필자는 이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사고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것은 과거에 일에만 해당되는 것 이 아니라, 현재에도 부합되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많은 회의감을 느끼고 흥미를 잃게 된다. 우리는 각박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자신에게 미치는 일 또한 생각하는 것을 멈춘 소위 ‘무사고’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우리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 볼 수 있으며 나아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만한 기준을 각각 개개인이 결국에는 언젠가는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소위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말을 한다. 그렇기에 19세기에 대표적인 악의 평범성의 예로 아이히만을 들 수 있지만 이 단순한 예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할 수 없다.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과거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현실 속에서의 자신의 ‘사고’를 조금 더 확장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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